나랏말씀 7호             술맛 나는 안주로 씹히는 교장           李 翰 烈            


술맛 나는 안주로 씹히는 교장

                                                            李 翰 烈

      무척 오랜만에 5,6년 전에 퇴임한 고문옥 전 교육국장님으로 부터 고문옥닷컴 방문자들에 대해 만찬 초대가 있었다. 친구 노양주 연구관과 함께 가을비 내리는 해운대 크리스탈 뷔페로 갔었다. 돌아보면 감개무량하면서도 광안대교의 가로등 불빛처럼 흘러간 시간들이 회한에 젖고 있었다. 고 국장님께서 퇴임하신 후 며칠 있다가 노양주 연구관과 함께 해운대 달맞이 가든에서 국장님을 모시고 저녁을 대접한 적이 있었다.

      울산광역시교육청의 초창기에 울산교육을 위해 묵묵하게 주춧돌을 놓은, 한 마리 학처럼 깨끗하게 그러면서도 일체의 얼룩을 남기지 않으시면서 사도를 실천한 교육자에 대한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의였다. 우리는 국장님과 동기이면서 절친한 친구인, 후배들에게 존경을 한 몸에 받으면서 술자리에서는 늘 이야기 메뉴의 '술맛 나는 안주'로 잘 씹히는 임영무 부장님이 떠나실 때도 노 연구관과 둘이서 별도로 대접을 하면서 석별의 정을 나눈 적이 있었다.

      내가 고문옥 교육국장님을 모시고 교육청에서 장학사로 근무할 때 국장님의 고매한 인품에 매료되어 퇴임하시고 난 뒤 그 인품을 그리면서 '마지막 선비"라는 시를 지어 연구회지에 실은 적이 있었다. 국장님을 잘 아는 분들은 정말 시로 잘 표현했다고 격려의 칭찬을 듣곤 했었다. 국장님에 대해서는 이미 고인이 되신 중광 김지웅 교육감님의 간곡한 삼고초려로 인해 어쩔 수 없이 교육국장직을 수락하셨다는 일화는 잘 알려져 있으며, 사람을 볼 줄 아는 중광님의 혜안이 빛났었다고 교육계의 많은 선배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는 것을 듣곤 했었다. 1년 6개월 남짓 국장님과 함께 근무하면서 국장님으로 부터 배어나오는 향기를 직접 맡았던 나는 '교육자의 길을 어떻게 걸어야 하는가'를 깨닫곤 했었다.

      교육감 다음으로 권력의 자리였지만 불의나 부정과는 타협이 되지 않는 청죽 같은 곧은 성품은 가히 후배들의 귀감이 되도고 남음이 있었다. 흔들리지 않고 正道을 걷는 그 고매한 인품이 울산 교육을 튼실하게 키우는 자양분이 되었다는 것을 몇몇 사람들만 알고 있었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울산교육의 기반을 반듯하게 닦으시려고 헌신한 분으로 알고 있는 교육가족들이 많지는 않으나 중등에서는 초등보다 비교적 잘 알려져 있었다. 내가 직접 목격한 사실은 국장님께서 명퇴 신청 후 자리를 비운 얼마 동안 가면을 쓴 채 자신을 숨기고 있던 날 파리들이 서서히 본색을 드러내는 것이었다. 혹자는 자신의 야망을 채우기 위해 비비고, 불고, 용천을 떨면서 권모술수를 서슴없이 발휘하였고, 혹자는 탐관오리의 작태를 그대로 드러내면서 물을 흐리게 하는 것을 보았다. 난 그 때 '이런 가면을 쓴 인간들과 함께 교육의 배를 타고 있구나!' 라고 자탄을 했었다. 국장님도 이런 인간들을 이미 간파하시고 계셨으며 가끔 직설적으로 질타하시는 것을 직접 내 눈으로 본 적도 있었다.

      '고문옥닷컴 친목의 밤'에 모인 분들의 면면을 보니 지난날에 교육장, 교육위원회의장, 장학관, 교장, 대학교수를 지내신 분들이나 현직 교장이나 교육계에 몸담고 계시는 분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 중에는 교육계 외에 바깥 분들도 몇 분 계셨으며, 교육계 정년퇴임 선배님들은 그림을 그리거나 시를 쓰거나 난을 키우거나 분재, 수석 등에 취미를 붙이며 여유롭게 지내고 계셨다. 시교육청 중등교육과장을 거쳐 울산중앙여자고등학교 교장선생님으로 정년퇴임을 하신 류춘형 교장선생님께서도 그림에 빠져서 재미를 붙이고 계셨으며, 개운초등학교에서 정년퇴임을 하신 정옥길 교장선생님은 詩 쓰기에 흠뻑 젖어 계셨다. 모두가 한 결 같이 황혼의 노을처럼 곱게 타고 계셨다. 깨끗하게 늙어가는 은빛의 모습이 눈부셨다. 특히 70여명의 만찬 비용을 부담하면서 홈페이지에 닷컴 회원들의 활동상을 보여주시는 고 국장님과 사회를 보면서 좌중을 웃기시는 임영무 교장선생님은 원래부터 무욕의 생활이 몸에 배여서 그런지 퇴임 당시나 지금이나 전혀 변함없이 건강한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비 내리는 해운대 정류장에서 버스를 타고 돌아오면서 '나는 황혼녘에서 어떤 모습으로 서 있게 될까'하는 생각이 차창의 빗줄기처럼 뿌려졌다. 모두가 재직 시에 원만한 인품으로 청렴하고 바르게 학교를 경영하신 분들이었다. 내가 교장으로 승진할 때 축하를 보내주신 분들에게 인사장을 쓰면서 교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훗날 후배들에게 술집의 맛 없는 안주로 씹히는 그런 교장은 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지금도 술자리에 가면 종종 술맛 떨어지게 맛 없는 안주로 씹히는 퇴임 선배들이 있으며, 심지어는 욕까지 덤으로 얻어먹는 분들도 계신다.

      석유회사에서 명퇴를 하고 난 뒤 개인택시를 모는 내 아우가 가끔 손님들을 태울때 교장들을 험담하고 욕하는 교사들을 본다고 하면서 나에게 처신을 잘 하라는 듯이 은근히 질러댄 적이 있었다. 나는 나름대로 원칙을 준수하면서 인간적으로 아동 본위의 교육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인기 관리 때문에 교장의 옳은 소신대로 학교를 경영하지 못한다면 그건 직을 그만 두어야 한다. 교사들에게 인심을 잃지 안으려고 학교를 퇴행적으로 운영하는 분들을 볼 때 정말 한심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울산교육의 부실이 여러가지가 있지만 적당히 넘기는 학교장의 보신에 급급한 그릇된 경영이 더 큰 부실의 폐해를 초래한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승진했을 때의 품었던 마음의 빛이 바래지 않게끔 각오를 새롭게 하듯이 훗날 한 점 부끄러움 없이 떳떳하게 후배들과 학부모에게 박수를 받으면서 퇴임하는 교장이 되려고 나 자신 노력을 다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죄를 짓지 않는, 진정 아이들의 꿈을 키우는 철학이 서 있는 교장이 되려는 것이다. 바르고 소신 있게 바르게 실천한, 원도 한도 없이 바른 교육을 위해 헌신한, 후배나 학부모에게 두 선배님들 처럼 이야기 메뉴의 '술맛 나는 안주'로 씹히는 그런 師表로 기억되고 싶다.

          李翰烈 : 울산내황초등학교 교장 / 울산작가회의 회장
    - 나라말씀 7호.2006 / 울산초등국어교육연구회 편 64페이지 -



愚石 李翰烈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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