獨島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Ⅱ
━━━━━━━━━━━━━━━━━━━━━━━━━━━━━━━━━━文玉敎職노트 14-13
한국교육신문(EDNEWS)한국교육신문사 기사일자: 96/03/12
"일본의 영유권 망언의 저의를 간파해야"

    독도의 자연과 경영

    그러면 독도는 어떠한 섬인가? 독도는 동해 한복판 울릉도 동남방 49해리, 동경 131도 52분 22초, 북위 37도 14분 18초의 해상에 위치한 화성암으로 된 고도(孤島)인데, 서도?동도의 두개의 주도와 주변 해면에 산재한 30여개의 부속 암초로 둘러 쌓여 있다. 울릉도와의 거리는 49해리인데 반해 일본 隱岐島와는 83해리 떨어져 있어, 한국쪽에 가깝게 위치한다.

    독도의 東島는 분화구로 되어 있으며 해면에서 높이 98미터, 면적 64698평방미터, 주위 1.9킬로미터이고, 西島는 표고 168미터, 면적 92000(?)평방미터, 주위 2.1킬로미터에 달하는 작은 섬으로 절벽과 많은 동굴이 있다.

    독도는 울릉도와 마찬가지로 동해가 형성된 후 존재해 있던 東海底에서 분출, 형성된 섬으로 추정되며, 근해의 수심이 급격히 깊어지고 모래사장이 전혀 발달되어 있지 않으며, 섬을 구성하고 있는 암석이 울릉도와 같은 粗面岩인 점에서 울릉도와 동시에 분출했거나, 적어도 울릉도의 재차 분출과 같은 시기에 이루어진 것 같다 한다. 또 지형상 早壯年期 내지 壯年期의 화산암이고 波蝕崖 또는 岩石海岩을 이루고 있어 거의 사람이 살기 어려운 不毛의 땅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때문에 이곳에 사는 동식물군도 울릉도나 육지의 해안지역에 비해 개체수가 훨씬 적다. 육상 식물로는 명아주, 쇠비뭄, 괭이밥, 까마중 등 44종의 초본류가, 해중에는 미역, 다시마 등 45종의 해조류가 서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또 육상 곤충류는 쥐며느리, 감옷바다벼룩, 귀뚜라미, 민집개벌레 등 16종이 관찰되며, 해중에는 임연수어, 방어, 꽁치, 고등어, 전갱이, 오징어, 명태 등 어류와 분홍성게, 보라성게, 멍게, 군수 등 패류와 물개 등의 해상동물이 조사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육해 도식물의 채집이 용이한 것이 아니고, 개체수가 많지 않아 오징어, 꽁치, 명태를 제외하고는 수익성이 별로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양국간에 영유권 분쟁이 일어나는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그 첫째는 양국간의 어로저지선 확정상의 문제이다. 세계적으로 연안 각국은 해양의 오염방지, 해중생물의 보호를 목적으로 다투어 200해리 전관수역을 선포하고 있다. 이에따라 한국과 일본도 해양주권선언을 한 바, 독도를 기점으로 한다면 그만큼 전관수역이 확장되기 때문이다. 또 한가지는 전략상의 문제이다. 독도를 중심적으로 하여 지도상에 콤파스로 원을 그리면 원 내에 한국과 일본은 물론 연해주, 중국의 일부까지 포함된다. 천자장비가 날로 광역화, 치밀화를 기하는 현대전에 있어 독도의 군사 전략상의 중요성이 크며 이는 일찍이 러?일 전쟁 당시 일본군의 망루가 독도에 설치되고, 이곳의 정보를 통해 러시아의 발틱함대를 궤멸시켰던 사례에서 충분히 증명되고도 남음이 있다. 그런 까닭에 제국주의 침략을 시도하던 일제로서는 여하한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독도를 수중에 넣어야 했고, 그것이 시마네현 고시로서 나타났으며, 또 오늘날에 있어서도 지속적
    으로 망언을 되풀이하면서 야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독도의 영유가 일본의 뜻대로 되기는 어렵다. 국제적으로 영유권 분쟁에 있어서는 어느나라가 일찍이 認知하여 행정적 조치를 취하였고, 오늘날까지 지속되었는가가 판정의 초점이 된다. 그런 점에서 독도는 분명히 우리의 영유이다. 일찍이 신라 지중왕 때 이사부가 于山國을 정벌한 이래로 일제의 한국 침탈 36년을 제외하고는 행정적 관리가 지속되어 왔다. 고려시대에는 島主로부터 연례적으로 조공을 받아 왔으며 이에 따라 조공차 온 島民에게 正朝?正位라는 관직을 내렸으며, 德宗 때에는 羽陵城主의 아들인 大義乃多郞이 공물을 바쳤으며 仁宗 때부터는 지금의 강원도 채무국장에 해당되는 溟州道監倉使가 그곳을 관할하였다. 조선 太宗 때에는 독도에 대하여
    于山이라는 호칭을 씀과 동시에 이곳에 안무사를 파견하고 있다. 大宗 16年 金麟雨가 武陵等處安撫使가 되어 울릉도와 독도에 도망해 있는 을 刷出했으며, 이때의 보고에 따라 世宗 7年에 오면 金麟雨가
    재차 파견됨에 있어 공식직함이「于山武陵等處安撫使」였다. 武陵이 羽陵?蔚陵?茂陵과 더불어 울릉도의 이징인 것 같이 于山은 宮山?于山?瓮島?독섬 등과 더불어 獨島의 이칭이었는데 그의 공식직함이 이같이 바뀐 것은 조선왕조의 중앙행정부가 울릉도와 더불어 독도를 공식 행정관할에 포함시켰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다만 조선왕조는 육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어 수시적으로 관리가 어려운 틈을 타서 背國逃珷犯이 잠입하요 假倭, 즉 倭寇를 가장한 해적의 근거지가 됨을 방치할 목적으로 울릉도와 함께 空島政策의 대상이 되게 하고 조선전기에는 수시로, 조선후기 부터는 3년에 1차 관리를 보내 경영캐 했던 것이니, 독도의 인지에 있어서나 경영에 있어서나 저들 일본이 주장하는데 비해 월등 유리할 뿐 아니라, 현재 우리의 땅으로 우리의 경비병력이 지키고 있다는 잇점도 가지고 있어 결코 불안히 여길 일이 아니다. 일본 역시 이를 모르는게 아니다.

    오직 한가지 우려되는 점은 우리 국민성의 문제이다. 얇은 냄비처럼 너무 빨리 데워지고, 너무 빨리 식는 국민적 정서로 인해 이 문제에 담건을 가지게 될까 우려된다. 일본측의 저의는 독도영유에 있기 보다, 이를 통한 또다른 이득을 취하려는데 있다. 따라서 냉정하고 의연하게 다룰 일이다. 망언의 배경을 심사숙고해야 될 때이다.